[안현실 칼럼] AI 강국 싱가포르의 지혜

입력 2023-07-26 17:37   수정 2023-07-27 00:40

싱가포르가 글로벌 인공지능(AI) 강국으로 급부상했다. 2023년 영국 미디어 회사 토르토이스가 62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글로벌 AI 인덱스에서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로 올라섰다. 경제 규모와 인구 대비 AI 역량을 보는 집중도(intensity)에서는 이스라엘도 제친 세계 1위다. 이번 평가는 세계적으로 스타트업 투자가 냉각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챗GPT 등 초거대 생성형 AI 붐이 불고 있는 시기여서 특히 눈길을 끈다. AI 잠재력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싱가포르는 인재(4위), 인프라(3위), 연구(3위), 스타트업·투자·비즈니스(4위)에서 최상위권 국가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스타트업·투자·비즈니스의 경우 한국은 18위를 기록, 싱가포르와의 격차가 가장 크게 났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64개국을 대상으로 평가하는 국가 경쟁력 4위(2023년), 디지털 경쟁력 4위(2022년)인 싱가포르를 두고 역사적 행운이 겹쳤다는 해석도 있을 수 있다. 영국이 아편전쟁 후 중국과 인도를 연결하는 중계항으로 싱가포르 개발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던 전환점에서부터 최근 중국이 홍콩국가안전유지법을 시행하면서 ‘1국 2제도’가 사실상 붕괴돼 홍콩이 싱가포르에 밀리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하지만 싱가포르가 미·중 충돌 상황에서 AI 강국으로 약진한 데는 더 큰 요인이 있다.

세계 권역마다 관문 역할을 하는 허브 도시가 있다. 바로 미국 뉴욕, 영국 런던이 떠오르겠지만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최적지로 꼽힌다, 홍콩이 중국화되면서 더욱 그렇다. 기후와 치안, 생활의 질만 따진다면 경쟁할 도시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조건인 비즈니스의 자유나 용이함을 따지는 순간, 싱가포르를 능가할 곳을 찾기 어렵다.

국제공항 등 편리한 교통조건, 영어로 회사 설립부터 비즈니스의 모든 활동이 가능한 언어환경, 우수한 초·중등 교육과 글로벌 대학, 가정부·베이비시터의 고용 용이성, 국제학교 접근성, 그리고 부(富)에 우호적인 세제 등도 큰 매력 포인트다. 한마디로 글로벌 허브가 되겠다는 그랜드 디자인과 일관된 실행력을 빼놓고는 지금의 싱가포르를 설명하기 어렵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핀테크 중심지가 될 여의도에서만큼은 영어로 일하고 사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서울이 어떻게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세계적인 공급망 재편은 경제가 죽고 사는 변수다. 국가마다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미·중이 충돌하고 있지만 그 틈에서 길을 찾으려 하거나, 상황 전개에 따라 유연한 전략을 구사하려는 FDI가 적지 않다. 이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유력한 선택지 중 하나다. 문제는 인재와 돈, 기술을 동반하는 FDI 유치에 한국이 얼마나 절박성을 갖고 있느냐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FDI ‘신고액’이 역대 최대 규모라고 발표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신고액은 의미 없는 수치에 불과하다. 대통령 해외 순방 투자 유치액도 마찬가지다. 신고액이나 유치액이 실제 ‘도입액’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투자 실현 과정에는 그만큼 변수가 많다는 얘기다. 밖에서 볼 때 투자 허브국이 되겠다는 한국의 비전과 실행력에 믿음이 가지 않으면 FDI 유치 강국이 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의 그랜드 디자인은 무엇인가. 인수위원회가 만든 비전과 계획을 국민이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교육개혁이 킬러 문항 논란으로 흘러가듯이 노동 등 각종 구조개혁이 희화화되기 시작하면 청사진이 있어도 실종 상태나 다름없다. 리더가 큰 그림도 없이 그때그때 목표를 마구 던진다고 느껴지면 지지자조차 떨어져 나갈 공산이 크다. 정권 출범 때 대통령실 수석 폐지와 책임 장관제 약속은 온데간데없다. 장관은 안 보이고 대통령이 만능선수처럼 나서는 형국이다. 전문가 의견을 경청하는지, 팀플레이가 이뤄지는지 의구심을 키우는 리더십은 언제 위기를 부를지 모른다.

한국은 지금 미·중 충돌 상황에서 허브국이냐 변방국이냐 운명의 기로에 서 있다. 저성장 탈출도 여기서 판가름 날 것이다. 왜 정권을 잡은 것인지 정부와 여당은 비전과 구조개혁, 리더십을 되돌아보라.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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